황제를 만든 코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무너졌을 때, 천재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코치이기도 합니다. 부치 하먼(Butch Harmon)입니다.

요즘 연습장 풍경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켜 두고 백스윙 탑의 각도, 척추 각도, 다운스윙의 샬로잉 동작을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모습입니다. 머릿속에는 유튜브에서 본 수십 가지 팁이 떠다닙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줄줄이 정상에 올린 살아 있는 전설은 그 모습을 보며 정반대를 말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30년 교습가의 시선으로 풀어 보려 합니다.



출처: 유튜브

Q. 부치 하먼이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자주 등장하나요?

맞습니다. 골프 중계나 코칭 인터뷰를 보다 보면 이 이름이 거의 모든 정상급 선수의 뒤에 한 번씩은 따라붙습니다.

잠깐 이름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타이거 우즈, 그렉 노먼, 필 미켈슨, 어니 엘스, 데이비스 러브 3세, 더스틴 존슨, 리키 파울러, 브룩스 켑카, 애덤 스콧. Golf Monthly의 부치 하먼 제자 명단 정리에 등장하는 선수들입니다. 한 코치의 제자 목록치고는 거의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본명은 클로드 부치 하먼 주니어(Claude “Butch” Harmon Jr.)입니다. 1948년 마스터스 챔피언이었던 클로드 하먼 시니어의 아들로, 골프 교습이 가업처럼 이어져 온 가문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그가 가르친 선수들이 합산한 메이저 우승 횟수만으로도 한 시대 골프사의 절반이 채워집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위상은 우승 숫자가 아니라 ‘슬럼프에 빠진 천재들의 마지막 구원투수’라는 별명에서 드러납니다.

 

Q. 17살 타이거 우즈, 부치 하먼과 만나 어떻게 달라졌나요?

1993년 8월이었습니다. 17살의 타이거 우즈는 막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탈락한 직후였습니다. US 주니어 타이틀을 3년 연속 따낸 직후라 충격이 컸습니다.

그의 아버지 얼 우즈는 코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휴스턴 인근의 로킨바 골프 클럽. 그곳에서 그렉 노먼을 지도하던 인물, 부치 하먼이 있었습니다. 노먼은 하먼과 함께 일한 지 2년 만에 1993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5년간의 메이저 가뭄을 끝낸 직후였습니다.

첫 만남을 부치 하먼은 Golf Monthly와의 회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타이거의 스윙을 처음 봤을 때, 그 자리에는 엄청난 양의 자연스럽고 가공되지 않은 재능이 서 있었다. 그는 마치 광을 내 줘야 할 트로피 같았다.”

그날 부치 하먼이 얼 우즈에게 건넨 말도 유명합니다. “저는 그의 아빠가 되려 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그의 골프 코치가 되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시작된 사제 관계가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1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 11년 동안 타이거 우즈가 만들어 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3년 연속 우승
  • 프로 메이저 우승 8회
  • 2000~2001년, 4대 메이저 트로피를 동시에 보유한 ‘타이거 슬램(Tiger Slam)’
  • PGA 투어 통산 34승

한 시대의 골프사가 한 사제 관계 안에 압축된 셈입니다.

출처: 유튜브

Q. 슬럼프에 빠진 천재들이 왜 라스베이거스로 찾아갔을까요?

부치 하먼의 진가는 사실 타이거 우즈와의 결별 이후에 더 분명해졌다고 봅니다. 라스베이거스 인근 리오 세코(Rio Secco) 골프 클럽의 부치 하먼 스쿨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천재들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통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두 명을 짚어 보겠습니다.

리키 파울러 — 부치 하먼이 키워 낸 11년

리키 파울러는 PGA 투어 데뷔 시즌인 2010년부터 부치 하먼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가 PGA 투어에서 거둔 우승 6승 중 5승이 하먼과 함께한 시기에 나왔습니다. 두 사람의 결별은 2019년이었습니다. 결별 이후 파울러가 한동안 부진을 겪다가 2023년 록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다시 우승했을 때, 하먼은 스카이 스포츠 골프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우승은, 제가 가르친 선수들이 따낸 메이저 우승들보다 개인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가 얼마나 밑바닥에 있었는지, 자존감과 게임, 인생까지 얼마나 가라앉아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지요.”

스윙 코치가 제자의 자존감과 인생까지 함께 봤다는 말, 이게 하먼의 진짜 정체성을 보여 줍니다.

브룩스 켑카 — 2020년의 백 투 베이직스

2020년 3월, 세계 랭킹 3위의 브룩스 켑카는 슬럼프에 빠진 채로 부치 하먼을 찾아갑니다. 당시 자신의 주 코치가 따로 있는 상태에서 일종의 ‘두 번째 시선’을 받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ESPN 보도에 따르면, 켑카는 하먼과의 세션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먼의 조언은 단순했습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종류였어요. 이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세계 3위 선수의 슬럼프 처방이 ‘단순한 기본기’였다는 사실. 이게 부치 하먼이 다른 코치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최고의 선수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새 이론이 아니라, 잊고 있던 기본입니다.

 

Q. 부치 하먼의 코칭 철학, 다른 코치와 무엇이 다른가요?

한 가지 단어로 답할 수 있습니다. 단순함입니다.

Golf Digest의 ‘Henni and Hally Can’t Quit Golf’ 팟캐스트 분석에서 헤니 코야크는 부치 하먼의 코칭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다른 코치와 다른 점은, 선수가 그와 2분만 대화하고 와도 “이제 좀 괜찮아진 느낌”을 들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하먼 본인도 같은 자리에서 강조했습니다. 좋은 코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긍정성, 정직함, 그리고 단순함의 균형이라는 것입니다.

코치 유형 비교: 어떤 코치를 만나야 할까

구분 이론·데이터 중심 코치 부치 하먼 스타일
첫 진단 도구 트랙맨·고속 카메라·스윙 분석 선수와 대화, 눈빛과 표정 관찰
슬럼프 처방 새 메커니즘·새 드릴 추가 기본으로 돌아가기, 머릿속 청소
스윙 이상향 이론적 완벽 스윙에 맞춤 선수의 타고난 본능과 느낌 유지
코칭 키워드 각도, 패스, 페이스 앵글 느낌, 자신감, 단순함
레슨 분량 한 번에 여러 가지 지적 한두 가지 핵심만 짚음

주목해야 할 부분이 마지막 줄입니다. 한두 가지 핵심만 짚는다는 점에서 부치 하먼의 방식은, 박인비의 남기협 코치, 김효주의 한연희 코치와도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만납니다. 동서양과 종목, 세대를 가리지 않고 거장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비슷합니다.

출처: 유튜브

Q. 아마추어 골퍼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이 부분이 사실 이 글에서 가장 실용적입니다. 부치 하먼의 코칭 철학이 멋있긴 하지만, 우리 같은 주말 골퍼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가 결국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론치 모니터가 대중화되면서, 클럽 패스가 몇 도이고 페이스 앵글이 몇 도인지 외우고 다니는 아마추어 분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과학적 데이터는 분명히 훌륭한 참고서입니다. 그런데 골프는 컴퓨터 게임이 아닙니다. 매번 바람이 바뀌고, 경사도가 다르고, 잔디 상태가 다른 자연 속에서 플레이하는 살아 있는 스포츠입니다.

아마추어 미스 샷의 상당수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이론이 쌓여 있어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제안드리는, 부치 하먼의 단순함 철학을 아마추어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4단계 연습법입니다.

1단계: 눈 감고 빈스윙 3회

연습 타석에 서서 공을 치기 전, 눈을 지긋이 감고 빈스윙을 3회 연속으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눈을 감으면 백스윙 각도나 폼에 대한 시각적 집착이 사라집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클럽 헤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체중이 오른발에서 왼발로 이동하는 흐름. 이 두 가지에만 집중해 보시면, 몸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부치 하먼이 선수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요즘 공을 칠 때 어떤 느낌이 드니”의 아마추어 버전이 바로 이 연습입니다.

2단계: 야구 스윙 드릴로 체중 이동 복구

백스윙 탑에서 몸이 굳어 체중 이동이 안 되는 분들에게 권하는 연습입니다. 클럽을 지면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든 상태에서 야구 배트 휘두르듯 수평으로 스윙합니다. 오른발 디디며 백스윙, 왼발 디디며 다운스윙.

이 동작을 30회만 반복해 보시면, 스윙이란 결국 오른발에서 왼발로 체중을 옮기는 단순한 원리라는 사실을 몸이 다시 기억합니다. 골프가 야구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야구보다 본질적으로 복잡해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입니다.

3단계: 오늘의 스윙 생각은 딱 한 가지

연습장에 서기 전 오늘 신경 쓸 한 가지를 정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테이크백을 낮고 길게 빼는 것만 본다”라고 정했다면, 그날은 다운스윙이나 피니시 폼이 조금 흐트러져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한 번에 두 가지를 고치려는 욕심이 스윙 리듬을 가장 빨리 무너뜨립니다. 브룩스 켑카가 부치 하먼에게 받은 처방도 결국 ‘세 가지 핵심’이었습니다. 세계 3위 선수의 슬럼프 탈출 처방이 세 가지였다면, 우리 주말 골퍼가 한 번에 한 가지만 잡는 것은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닙니다.

4단계: 유튜브 레슨은 일주일에 한 편만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유튜브 골프 레슨 영상을 일주일에 한 편으로 줄여 보십시오. 그리고 그 한 편의 내용을 일주일 동안 같은 연습장에서, 같은 클럽으로, 같은 동작으로만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에 다섯 명의 코치를 만나는 것보다 한 명의 메시지를 일주일 동안 몸에 새기는 편이, 부치 하먼이 가장 권장할 만한 학습법에 가깝습니다.





Q. 자주 묻는 질문

부치 하먼은 지금도 직접 선수를 지도하나요?

네, 다만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준은퇴’ 상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들 클로드 하먼 3세(Claude Harmon III)가 2019년부터 더스틴 존슨, 리키 파울러, 지미 워커 등의 주 코치 역할을 이어받았고, 브룩스 켑카 등 다수의 선수도 그가 지도합니다. 부치 하먼 본인은 스카이 스포츠 골프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가끔 선수들의 자문 역할을 합니다.

타이거 우즈와는 왜 결별했나요?

두 사람은 11년의 사제 관계 끝에 2004년 무렵 공식적으로 결별합니다. 결별 이후 우즈는 행크 헤이니, 션 폴리, 크리스 코모 등 여러 코치를 거쳤는데, 부치 하먼 시절에 거둔 메이저 8승이 우즈 커리어에서 가장 압도적인 시기로 평가됩니다.

‘타이거 슬램’과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같은 말인가요?

다릅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4대 메이저를 평생에 걸쳐 모두 우승하는 것을 뜻합니다. 타이거 슬램은 한 해에 4대 메이저를 모두 가져가는 캘린더 그랜드슬램과는 또 다른, 두 시즌에 걸쳐 4대 메이저 트로피를 동시에 보유한 상태를 뜻합니다. 2000년 US오픈·디 오픈·PGA 챔피언십과 2001년 마스터스 우승으로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한국 아마추어가 라스베이거스 아카데미에 가서 레슨을 받을 수 있나요?

리오 세코의 부치 하먼 스쿨은 일반 레슨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다만 부치 하먼 본인이 직접 지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치 하먼의 철학과 똑같이 가르치는 것은 사실 멀리 갈 필요 없이, 그 철학을 이해한 한국의 좋은 교습가 옆에 꾸준히 있는 편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좋은 코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매주 새로운 지시를 하지 않는 코치를 권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잘 안 나오는 날, 더 많은 이야기가 아니라 더 적은 이야기를 해 주는 코치인지 보시면 됩니다. 부치 하먼이 브룩스 켑카에게 그랬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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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선수의 골든 그랜드슬램 뒤에는 한 명의 코치가 있었습니다. 스윙보다 사람을 먼저 본 코치, 남기협입니다.

세계랭킹 1위, LPGA 통산 21승, 메이저 7승, 그리고 116년 만에 다시 열린 올림픽 골프 금메달. 박인비라는 이름 옆에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우승 없이 81개 대회를 흘려보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4년이 어떻게 끝났는지, 그 안에 우리가 골프를 배우는 자세에 대한 진짜 답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합니다.

 


Q. 박인비 이야기에 왜 남기협 코치가 늘 함께 등장하나요?

맞습니다. 단순한 미담이 아닙니다.

2020년 미국 골프채널이 박인비, 유소연, 미셸 위 세 선수의 커리어를 분석하면서 “박인비의 전환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 한 줄로 답한 적이 있습니다. 골프다이제스트 보도에 따르면 골프채널이 꼽은 박인비의 터닝 포인트는 정확히 “남편 남기협 코치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박인비 본인도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KBS 예능에 가족과 함께 출연했을 때는 남편을 “내 인생 최고의 코치이자 든든한 조력자”라고 표현했고, 결혼 전에는 “남편 만나기 전엔 스윙도 불안정했고 골프가 골프가 아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박인비를 떠올릴 때 2013년 시즌의 압도적인 성적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세계랭킹 1위, 메이저 3승, LPGA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그 다음에는 2015년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으로 완성된 커리어 그랜드슬램. 결국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까지 더해 남녀 통틀어 최초의 골든 그랜드슬램까지.

그런데 저는 그 화려한 결과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그 이전에 있다고 봅니다. 박인비 선수는 2008년 만 19세에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뒤, 약 4년 동안 단 한 번도 LPGA 투어에서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기에 그녀 옆에 자리 잡은 사람이 남기협 코치였습니다.

박인비의 부활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Q. 4년·81개 대회, 박인비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골프를 직업으로 해 본 사람만이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마추어 골퍼분들은 4년 슬럼프라고 하면 “그 정도 실력이면 즐기면서 치면 되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어 프로에게 무승의 시간은 단순히 트로피의 문제가 아닙니다.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박인비 선수는 두 번째 우승인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까지 정확히 81개 대회를 우승 없이 보냅니다. 매주 다른 도시, 다른 코스, 다른 잔디, 다른 바람을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을 끝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박인비 선수 본인이 표현한 그 시기는 이렇습니다. “2009년에는 대회에 출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윙과 정신력이 무너져 있었다.” 이데일리에 실린 박인비 본인 인터뷰의 한 구절입니다.

드라이버 입스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한 라운드에서 OB만 반복하다가 18번 홀을 맞이했는데 골프백에 공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아 기권한 일까지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모를 중시하던 당시 여자골프 스폰서 시장에서는 후원사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박인비 선수가 그 시기에 만난 코치들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정상급 교습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박인비를 중학교 3년 내내 지도했습니다. 닉 팔도, 미셸 위 등 슈퍼스타를 만든 인물입니다. 타이거 우즈의 스승으로 유명한 부치 하먼의 손길도 거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정작 둘 다 박인비의 손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박인비 선수는 손목 코킹이 잘 되지 않는 신체적 특성이 있습니다.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스윙 모델을 입히려다 손목 부상까지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교습가들도 박인비의 몸을 정확히 읽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 시간을 끝까지 견디고 다시 1위로 돌아왔다는 건, 사실 우승 자체보다 더 큰 일입니다.

 

Q. 남기협 코치는 다른 코치와 무엇이 달랐다고 보십니까?

많은 분들이 스윙 코치라고 하면 기술적인 부분만 떠올립니다. 그립이 어떻고, 어깨 회전이 어떻고, 임팩트 자세가 어떻고.

그런데 진짜 좋은 코치는 기술보다 먼저 선수를 봅니다.

남기협 코치는 본래 한국프로골프투어(KPGA) 유망주였습니다. KPGA 공식 선수 페이지에 따르면 1981년생, 임진한 골프아카데미 소속의 정회원 프로입니다. 임진한 프로의 수제자로도 잘 알려져 있죠. 즉, 본인이 스윙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박인비 선수에게 처음 한 일은, 스윙을 갈아엎는 게 아니라 박인비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목 코킹이 잘 안 되는 신체적 특성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그 위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스윙을 함께 다듬어 줬습니다. 백스윙을 매우 느리고 업라이트하게 가져가는 박인비의 독특한 스윙은 사실 본인 체형에 맞춘 결과물입니다. ‘컴퓨터 스윙’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정확성이 높은 그 동작은, 누군가의 이론에서 베껴 온 것이 아니라 박인비의 몸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남기협 코치가 강조한 또 한 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임팩트’입니다. 폼이 예뻐 보이는 스윙보다, 공에 힘이 제대로 실리는 임팩트를 우선으로 두는 코칭입니다. 박인비 선수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릴리즈 포인트를 살짝 조정해 준 이후로 “남편을 통해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300% 좋아졌다”고 직접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SBS 취재파일이 정리한 두 사람의 코칭 방식을 보면 남기협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이 흐트러질 때마다 본인이 직접 연습장에 가서 공을 수백 개씩 치며 아내의 스윙 궤도를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든 ‘족집게 팁’을 박인비에게 전달합니다.

박인비 선수는 SBS와의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안정감도 주고, 나의 스윙을 늘 봐주니 나쁜 스윙을 안 하게 된다. 내 몸에 맞는 스윙을 하는 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다.”

하지만 저는 기술적인 변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건 “너는 잘못된 선수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4년 동안 한결같이 전해 준 일입니다.

골프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그 주의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선수는 무엇을 할까요. 더 많은 기술을 찾습니다. 스윙을 또 바꾸고, 장비를 바꾸고, 레슨 선생님을 바꿉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더 의심합니다.

이게 가장 무서운 악순환입니다. 의심이 의심을 부르고, 변화가 변화를 부릅니다. 정작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좋은 것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남기협 코치는 박인비 선수에게 그 악순환의 입구를 막아 준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은 코치는 스윙만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수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옆에서 붙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Q. 그래서 박인비의 부활은 결국 어떻게 가능했나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두 사람의 호흡은 2012년에 첫 결실을 봅니다. 박인비 선수는 그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4년 만에 우승컵을 다시 듭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 박인비의 골프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라섭니다.

2013년 4월 15일, 박인비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합니다. 그해 시즌이 끝났을 때 그녀의 손에는 ANA 인스퍼레이션, US여자오픈, 위민스 PGA 챔피언십이라는 메이저 3개 대회 우승 트로피와 LPGA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이 함께 있었습니다. 한 시즌에 메이저 3개를 가져간 선수는 LPGA 역사에서 손에 꼽힙니다.

그 흐름은 한 해로 끝나지 않습니다. 박인비 선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3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에는 4년을 함께 견뎌 준 남기협 코치와 결혼합니다.

2015년, 박인비 선수는 마지막으로 남은 메이저 한 자리, 브리티시여자오픈마저 손에 넣습니다. LPGA 역사상 일곱 번째이자 아시아인 최초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두 가지 사건이 같은 해에 일어납니다. 6월에는 LPG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8월에는 문화일보가 정리한 116년 만의 리우올림픽 여자골프 무대에서 16언더파 268타로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남녀 골프 통틀어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가진 최초의 선수, 이른바 ‘골든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박인비라는 이름으로 확정됩니다.

저는 그 결과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남기협 코치는 박인비를 ‘새로운 선수’로 만든 게 아닙니다. 박인비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다시 꺼내 준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코치들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론을 선수에게 입히려 합니다. 반대로 좋은 코치는 선수 안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닦아 줍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갈라집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와 부치 하먼이 박인비의 몸을 다 살리지 못했고, 남기협 코치가 그 일을 해냈다는 점이 그 차이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Q. 아마추어 골퍼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가장 흔한 실수 하나를 짚고 싶습니다.

요즘 골퍼분들은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봅니다. 프로 선수 스윙을 보고, 인플루언서 레슨을 보고, 매주 새로운 팁을 들고 옵니다. 그리고 그걸 자기 스윙에 그대로 입히려 합니다.

박인비 선수의 스윙을 다시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교과서적인 스윙은 아닙니다. 백스윙이 유난히 느리고, 손목 코킹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본인만의 독특한 템포와 리듬이 있죠.

그런데 그 스윙으로 박인비는 LPGA 21승, 메이저 7승, 올림픽 금메달을 가져갔습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의 정석 스윙으로는 못 한 일을, 본인 몸에 맞춘 그 어색해 보이는 스윙이 해낸 셈입니다.

골프는 예술 점수를 받는 종목이 아닙니다. 결과를 만드는 종목입니다.

중요한 건 모양이 아닙니다. 반복 가능한 리듬입니다.

남의 스윙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리듬을 찾는 것이 진짜 출발선입니다.

아래는 제가 30년 레슨하면서 본 두 부류 골퍼의 차이입니다.

구분 흔히 정체되는 골퍼 꾸준히 성장하는 골퍼
참고하는 대상 매주 새로운 프로 스윙 본인의 좋았던 라운드 기억
레슨 받는 자세 “제 스윙 어떻게 고쳐 주세요” “제 스윙 어디가 강점인가요”
안 맞는 날의 반응 스윙을 또 바꿔 본다 리듬과 템포부터 점검한다
장비 교체 빈도 매년 새 드라이버·아이언 본인 스윙에 맞는 장비를 오래 쓴다
장기 변화 폭 매년 다른 스윙 매년 다듬어지는 같은 스윙





제가 30년 동안 레슨하면서 가장 자주 보는 풍경이 있습니다. 회원분이 새로운 책 한 권, 새로운 유튜브 채널 하나를 보고 오신 다음 주에 스윙이 통째로 바뀌어 옵니다. 그리고 한두 달 뒤에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다”며 다시 처음의 스윙을 들고 오십니다.

박인비 선수에게 데이비드 레드베터의 스윙을 입혔을 때 손목 부상으로 이어졌듯, 회원분 본인의 몸과 맞지 않는 동작은 결국 통증이나 잘못된 습관으로 남습니다. 더 무서운 건 그 과정에서 본인의 ‘원래 좋았던 것’이 함께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좋은 레슨은 스윙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좋은 레슨은 골퍼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본인의 어깨가 어떻게 회전하는지, 본인의 손목이 어디까지 꺾이는지, 본인의 템포가 빠른지 느린지를 함께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남기협 코치가 박인비 선수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코치의 이름값이 아니라, 회원의 몸값을 먼저 본 코치였습니다.

스윙을 바꾸는 코치는 많습니다. 사람을 지켜 주는 코치는 드뭅니다.

레슨의 목적은 누군가를 복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만의 골프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진짜 코칭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자주 묻는 Q&A

박인비 선수의 슬럼프 기간은 정확히 얼마였나요?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까지, 약 4년에 걸쳐 LPGA 투어 81개 대회 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골프채널과 골프다이제스트 등 다수 매체가 이 기간을 박인비 커리어의 가장 어두운 시기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남기협 코치는 정식 골프 코치 자격이 있나요?

네, 남기협 코치는 KPGA(한국프로골프협회) 정회원 프로입니다. 1981년 12월생으로 1999년 KPGA에 최초 입회한 뒤 2001년 투어프로로 등록했으며, 현재 임진한 골프아카데미 소속입니다. 임진한 프로의 수제자로 SBS골프 등 다수 매체에 출연하며 코치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박인비 선수의 백스윙이 유난히 느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인비 선수는 손목 코킹이 잘 되지 않는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기협 코치는 이 특성을 약점이 아니라 그대로 살려야 할 박인비만의 조건으로 보고, 백스윙을 매우 느리고 업라이트하게 가져가는 본인 맞춤형 스윙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정확도가 매우 높아 ‘컴퓨터 스윙’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박인비 선수는 어떤 메이저 대회들을 우승했나요?

US여자오픈(2008·2013), ANA 인스퍼레이션(2013), 위민스 PGA 챔피언십(2013·2014·2015·3연패), 브리티시여자오픈(2015) 등 통산 7회 메이저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한국인 선수 중 메이저 최다승이며, 이를 바탕으로 2015년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골든 그랜드슬램’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모두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가진 선수에게 붙는 명칭입니다. 박인비 선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정리한 박인비 인터뷰에서 보듯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로 남녀 골프 통틀어 최초로 이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아마추어도 박인비 같은 코칭을 받을 수 있나요?

모든 골퍼가 박인비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코칭의 본질은 같습니다. 본인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고, 본인의 리듬을 지키고, 본인이 즐길 수 있는 골프를 만드는 것. 이건 프로든 아마추어든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좋은 코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첫 만남에서 본인을 갈아엎으려 하는 코치보다, 본인의 좋은 점을 먼저 찾아 주는 코치를 권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잘 안 나오는 날에도 흔들리지 않고 같은 말을 해 주는 코치인지 보셔야 합니다. 코치의 말이 매주 달라진다면, 선수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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